
장벽 없는 초록
식물 곁에서 이웃이 되어갑니다
행복농장 협동조합 최정선 상임이사
식물을 기르고 돌보는 일은 때로 사람과 사람을 잇는 일이 된다. 충남 홍성 행복농장에서는 정신질환을 가진 이들이 허브를 가꾸고 일하며 마을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어간다. 농장에서 시작된 만남은 일터를 넘어 이웃과 마을로 이어지고, 사회적으로 소외되기 쉬운 사람들이 지역사회 안에서 자신의 역할과 관계를 만들어가는 힘이 된다. 식물을 매개로 누구나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가는 행복농장을 찾았다.

Q. 행복농장은 어떤 곳인가요?
행복농장은 허브를 재배하면서 농업을 통해 사람을 돌보고, 지역사회와 관계를 만들어가는 사회적 농장 이에요. 농업과 돌봄이 어떻게 만날 수 있을 것인가를 지역의 농장과 협의하는 협동조합 형식의 농장입니다. 정신질환을 가진 분들이 농장에서 식물을 가꾸고 일하면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지역사회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어요.
처음 행복농장을 설립했을 때는 충남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와 협력해 정신질환을 가진 분들이 농업을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시작했어요. 이후 지역의 협업농장과 마을 주민들이 함께하면서 지금처럼 농사와 돌봄, 일과 관계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농장 으로 자리 잡게 됐습니다.
Q. 행복농장에서는 주로 어떤 작물을 재배하나요?
처음부터 허브를 주작물로 정했어요. 정신질환을 가진 분들과 함께하는 농장이다 보니, 향기를 맡으며 일할 수 있는 작물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리고 100% 유기농법으로 재배하고 있고요.
현재는 와일드 루콜라와 바질, 애플민트 등을 재배해 생잎으로 판매하고 있어요. 작물은 지역장터에 보내거나 레스토랑, 개인 거래처에 납품하고요. 바질소금과 바질가루를 만들고, 허브를 자연 건조해 차로 판매하기도 합니다.
또 저희 농산물뿐 아니라 마을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함께 소개하고 판매하고 있어요. 이 공간도 단순한 판매장이 아니라 사람들이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작은 공연을 여는 등, 마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오가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고요.
Q. 정신질환을 가진 분들이 농업을 경험하고 일로 이어가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나요?
처음부터 고용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충남 지역의 정신요양원이나 관련 시설에서 참여자를 모집해, 농장에서 직접 몸을 움직이고 식물을 돌보는 농업 프로그램을 운영했어요. 그중 농업에 관심을 보이는 분들은 심화 과정으로 이어졌어요.
마을 숙박시설에서 지내면서 2~3주 동안 농장 스태프들과 같은 일정으로 일을 해보는 거예요. 일이 자신에게 맞는지, 농장에서도 함께 일할 수 있을지를 서로 알아가는 시간이었던 셈이죠. 저희가 중요하게 본 건 일방적으로 기회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서로 맞는지를 충분히 살펴보는 거였어요. 본인이 원하는지도 중요하고, 농장 안에서 함께 일하고 소통할 수 있는지도 중요하니까요.
Q. 농장에서 시작된 일과 관계가 마을 안에서는 어떻게 이어지고 있나요?
일정 기간 함께 일해본 뒤 실제 고용으로 이어져 오랫동안 함께한 분들도 계세요. 그중 한 분은 농작업이 어려워지면서 마을협동조합에서 숙박시설과 공간을 관리하는 일로 옮겨 계속 일할 수 있도록 연결했고요.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건 행복농장뿐 아니라 마을이 함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농장과 마을협동조합은 독립된 조직이지만 서로의 공간과 활동을 연결하며 긴밀하게 관계를 맺고 있어요. 농장 밖에서도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마을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이어갈 수 있었던 거죠. 특히 농촌은 혼자 살아가기 어려운 만큼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중요해요. 마을에서 이분들을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받아들여준 것이 굉장히 큰 힘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농장 밖에서도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마을 안에서 서로 돌보는 관계가 생기니까 일을 지속하는 데도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Q. 프로그램 참여자들이 마을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한 이유가 있나요?
저희는 직업 재활 프로그램을 할 때 일부러 행복농장 안에서만 활동하지 않았어요. 참여자들이 농장 밖에서도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다른 친환경 농장에 가서 함께 일하기도 하고, 마을 행사나 잔치에도 참여했어요. 점심을 마을 식당에서 먹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르신들과 인사를 나누고, 바쁠 때는 채소를 다듬거나 설거지를 돕기도 했고요.
한 분은 기념일마다 작은 선물을 준비해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어요. 그렇게 지내다 보면 어느 순간 ‘프로그램 참여자’가 아니라 마을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 되는 거예요. 저희가 바랐던 것도 그런 관계였고요.
Q. 마을에서 편견을 갖거나 낯설어하던 주민들도 있었을 텐데요. 농장과 마을이 관계를 맺어오면서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정신장애가 있는 분들을 실제로 만나본 경험이 많지 않다 보니 처음에는 낯설어하는 분들도 있었어요. 그래서 초기에는 사회복지사 선생님을 모셔서 마을 주민들과 함께 정신건강과 정신장애에 대해 배우는 시간도 가졌고요.
한번은 마을에서 단체 여행을 갔는데, 처음에는 이장님도 정신질환을 가진 두 분이 함께 가는 걸 걱정하셨대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 어르신들에게 간식을 나눠드리고 버스 안의 쓰레기도 치우면서 자연스럽게 어울렸던 거예요. 다녀온 뒤에는 이장님이 “다음에도 같이 가야겠다”고 하셨고요. 결국 인식은 직접 만나고 함께 생활하면서 달라지는 것 같아요. 다른 농장에서도 처음에는 낯설어하던 분들이 계속 만나면서 생각이 바뀌었고, 나중에는 “우리 농장에서도 장애인을 고용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이야기하는 분들도 생겼어요.
Q. 마지막으로, 행복농장이 생각하는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특별한 철학이라고 할 건 없어요. 그냥 장애가 있건 없건 모두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는 조금 더 도움이 필요할 수 있고,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돕고, 어려운 부분은 전문기관과 연결하면 되는 거죠.
저는 오랫동안 함께한 분들과 가능하면 계속 이웃으로 살아가고 싶어요. 농장에서 일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보다, 이 지역 안에서 관계를 잃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건 장애가 있는 분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도 아니에요. 청년도, 어르신도, 저희도 결국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가잖아요. 필요할 때 서로 손을 내밀고 도움을 주고받으며 함께 살아가는 것, 그런 관계가 이 농장과 마을에서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행복농장에서 만난 ‘돌봄’은 누군가를 돕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식물을 기르고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저마다 자신의 역할을 발견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지역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진다. 농장에서 시작된 작은 경험들이 마을로 이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에서도 나타난다. 국립세종수목원은 2026년부터 장애인, 중장년, 학교 밖 청소년 등 사회적 취약계층이 수목원 현장의 다양한 직무에 참여할 수 있도록 현장 중심의 맞춤형 직무교육을 운영하고 있다. 생활정원 관리, 자생식물 체험 콘텐츠 제작 등 실제 현장과 연계한 교육을 통해 장애인들이 식물 관리부터 판매까지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자립지원 체계를 마련했다. 식물을 돌보는 경험이 배움으로 끝나지 않고, 일과 자립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돕는다.
식물과 정원 그리고 수목원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인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역할을 발견하고 사회와 연결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자연이 사람을, 사람이 사회를 잇는 셈이다. 행복농장에서 만난 초록의 가치가 그러했듯,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역시 수목원·정원을 매개로 소외 없는 참여와 상생의 가치를 넓혀가고 있다.










